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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통합반대운동본부 31일 세종청사 시위
“자율적 선택권 관점에서 011, 017 계속 쓰게 해달라” 요구

휴대전화 앞자리 011·017 번호를 사용하는 SK텔레콤의 2G 서비스가 27일 0시 종료됐다. SK텔레콤이 2G 서비스를 끝낸 건 25년 만이다. 서울 시내 한 SKT 매장에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휴대전화 앞자리 011·017 번호를 사용하는 SK텔레콤의 2G 서비스가 27일 0시 종료됐다. SK텔레콤이 2G 서비스를 끝낸 건 25년 만이다. 서울 시내 한 SKT 매장에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011과 017로 시작하는 SK텔레콤의 2G 서비스가 27일 25년만에 종료됐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2G 서비스 종료로 011과 017 번호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용자들은 오늘(31일) 세종특별시 소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문에서 “01X번호를 그대로 쓰게 해달라”는 시위를 진행한다. 이들은 “선택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쓰던 번호를 계속 쓰게 해달라”고 호소할 예정이다. 2002년부터 과기정통부가 추진해온 ‘010통합정책’의 취지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파워볼게임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신대용 매니저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헌법소원을 다시 낼 것”이라며 “우리의 요구는 쓰던 번호를 계속 쓰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카페에는 3만7000여명이 가입돼 있다.

다음은 신대용 매니저와의 일문일답

-오늘 시위에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무엇인가

▲2G가 종료되더라도 쓰던 01X 번호를 그대로 3G와 LTE, 5G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2G 종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2G 종료는 하되, 이 단말기에서 썼던 ‘한시적 번호 이동’ 기한을 늘려 번호를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번호를 그대로 쓴다고 돈이 더 들어가거나, 기술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010통합정책’을 근거로 01X 번호 사용을 막고 있다. 저희는 010통합정책이 잘못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010통합정책을 반대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2002년에 과기정통부가 ‘번호브랜드화’를 이유로 010통합을 한 정책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정부가 처음부터 사업자마다 다른 번호(SK텔레콤 011, KT 016 등)를 부여한 것부터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이후인 2004년에 ‘번호이동성 법안’이 통과돼, 통신사와 관계없이 번호이동이 가능해졌고 번호브랜드화란 개념이 없어졌다. 그런데 왜 그 전부터 01X 가입을 했던 사람들이 010에 통합이 돼야 하는가. 우리는 ‘번호이동성 법안’에 의거해 번호이동을 주장하는 것이다.

-소송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나

▲헌법소원을 다시 접수할 생각이다. 핵심 근거는 ‘자율적 선택권’이다. 2013년 헌법소원에서는 번호가 재산권이나 그 사람이 아이덴티티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이 되면서 휴대전화 번호도 사람 이름과 동격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SK텔레콤을 상대로 한 번호이동 청구소송은 대법원 상고가 들어가있는 상황이다.

-알박기나 다른 특혜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특혜를 바란다는 건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재산권을 근거로 삼지도 않았고, 손해배상 청구를 한 적도 없다. 그 점에서는 떳떳하다. 순수하게 쓰던 번호를 유지해달라는 것이고, 번호이동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번호는 ‘국가자원’으로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국가자원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재난상황이 아니다. 기술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선택권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딸과 공모해 아버지 살해한 혐의
1,2심 징역 18년..”심신미약 아냐”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는다며 애인의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이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을 확정받았다.파워볼엔트리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 장애인 근로사업장에서 알게 된 연인 B씨의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B씨의 부친이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자 반감을 품게 돼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일 B씨는 부친이 잠든 사이 A씨를 집으로 들어오게 했으며, A씨는 흉기로 여러 차례 B씨의 부친을 찌른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범행 당시 지적장애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A씨는 2주 전부터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흉기를 구입해 숨겨두고 당일에도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오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라며 “사회성숙 지수가 지적장애 판정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후회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면서 “지적장애와 피해자의 언동이 이 사건 범행 발생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B씨와 관련해서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로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적인 행위”라면서도 “심신미약 상태에서 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A씨가 범행을 제안하자 그에 대한 애정과 부친에 대한 원망 등이 겹쳐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심도 “B씨는 부친이 술에 취해 잠들 때를 기다린 후 A씨에게 연락하는 등 미리 범행을 계획했다가 실행에 옮겼다”며 “A씨는 딸인 B씨에게 부친을 살해할 것을 제의하고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며 1심을 유지했다.

이후 A씨만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 심신미약에 관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은 A씨가 이를 항소이유로 삼거나 원심이 직권으로 심판 대상으로 삼은 바가 없는 것을 상고이유에 비로소 주장하는 것이어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라며 “여러 사정에 비춰볼 때 A씨가 이 사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낸 것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었습니다. 지난 26일, 인수 협상을 이어온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측에 “다음 달 12주 동안 재실사를 하게 해 달라”라고 공문을 보낸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을 못 믿겠다”이었습니다.하나파워볼
 
지난해 말 부채 2조 8백억 원을 추가로 파악했는데, 인수예정자 동의 없이 채권단에서 1조 7천억 원을 차입하고, 여기에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 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 손실 등을 꼼꼼히 다시 따져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집 매매 계약서에 최종 사인하기 전에 그동안 집이 얼마나 더 엉망이 됐는지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항공업계에선 “‘재실사라’고 쓰고, ‘인수 포기’라고 읽는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정몽규 HDC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하고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실사하겠다는 것은 가격을 아주 파격적으로 깎거나 아니면 인수 무산을 선언하려는 의중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앞서 4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현산HDC 관계자는 그때 이미 제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을 믿기 어렵다. 많은 것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이 HDC현산 관계자 말을 정리해보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6월 재무 상황을 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부채가 수조 원이나 늘어났다. 졸지에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부실기업’을 사들이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 측은 자구안 마련은커녕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어쩌면 이미 그 당시 HDC현산은 ‘인수 불가’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더는 참지 않는다.”
 


금호산업도 더는 참지 않았습니다. HDC현산에 “다음 달 12일 이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곧바로 되받아친 것입니다. 러시아 정부의 기업결합심사를 끝으로 선행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으니,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하는 등 계약을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나항공 고위 관계자는 “잔금을 다 내지 않았는데 곳간 열쇠까지 내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HDC현산이 의도적으로 ‘전략적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 측이 지쳐 ‘계약종결’을 먼저 외치길 기다린 것 같다. 그리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항공업계에 정통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그동안 시간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HDC현산은 채권단과 만남조차 매우 소극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연애합니까, 편지라니요?’라고 말하며, 직접 만나자고 했겠는가?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간절하게 매달리는 형국이 되면서 HDC현산은 더 느긋해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재실사를 요구하는 것인 인수 의지가 아닌 ‘무산 의지’ 밝힌 거라고 봐야 한다. 정몽규 회장이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고 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 “우리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금호산업이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채권단이 우리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 ‘대마’는 결국은 살 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쓰러지면 발생할 고용·산업적 후폭풍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기에, 어떻게든 살려줄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직접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이스타항공의 고용 규모가 1천5백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몸집이 큰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계열사와 연계한 하도급 업체까지 고려하면, 고용은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 불어닥칠 파괴력은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실제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지원이 가능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도 “국유화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 협의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어떻게든 산소호흡기라도 붙여서라도 생명을 연장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1조 7천억 원 차입과 5천억 원 영구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채권단 한 고위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82대 중 52대가 빌려 쓰는 ‘리스 항공기’다. 이 임대비용만 연간 5,000억 원에 달한다. 인수가 무산되면 당장 항공기를 빌려준 해외 리스사들이 반환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들의 불신을 가라앉히고 경영도 어느 정도 안정화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투입해야 할 것이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 전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 전 회장


전문가들은 박삼구 금호아시아 전 회장 입장에서도 인수 무산이 나쁜 선택만은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당장 구주 매각대금을 받지 못해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부담이 되지만, 반대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지 않고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국민이 낸 세금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 현실적 대안은 ‘국유화’…성공 가능성은 ‘희박’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게 주어진 사실상 유일한 선택은 ‘국유화’입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8천억 원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아시아나항공 주식 37%를 가진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정부가 아시아나항공을 맡았다가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매각에 나서겠다는 복안입니다.
 
아시아나항공에 산소호흡기와 링거를 달아주는 비용, 당연히 ‘국민 세금’입니다. 그렇다 보니 당장 아시아나항공이 제2의 대우조선해양이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 품에서 20년 넘게 세금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국유화를 한다고 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국항공과 타이항공 등 전례를 봐도, 세계적으로 국유화된 항공사 중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국유화할 경우 민간보다 방만한 경영을 할 수 있다”라고 경계했습니다.
 
‘재매각’은 더 큰 숙제입니다. 부채비율이 6,281%에 달하는 부실기업을 살 기업은 사실상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는 지난해 6월 말 9조 5,988억 원에서 12월 12조여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여기에 올해 1분기 영업 손실도 -2,082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8억 원보다 적자 폭이 대폭 더 늘어난 것입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항공시장이 최악인 점을 고려하면, 매각한다고 해도 채권단이 더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국민 세금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뤄질 수 없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달콤한 꿈. 국적항공사를 운영하며 멋지게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꿈. 망가진 기업을 비싸게 팔아 그룹을 다시 세워보겠다는 꿈. 이 꿈들은 이제, ‘달콤한 꿈’이 돼가고 있습니다.
 


당장 닥칠 위험도 보지 못한 채 덤벼들었던 무능(無能). 핵심 계열사를 팔 정도로 부실경영을 하고도 사재 출연은커녕 65억 원의 보수까지 챙겨간 몰염치(廉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는 무책임(無責任). 그런 이들에게 ‘경영자’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마치 트로트 가수 현철이 김경호의 샤우트 창법으로 노래하는 것만큼 어색하고 또 불편합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지원조건으로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자구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평소에는 대주주로서의 이득을 누리면서, 정작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부끄러움은 다시는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않는 제도적 다짐으로 피어올라야 한다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몰염치’로 점철된 이 ‘진흙탕 싸움’을 국민은 준엄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후임 금통위원 조윤제(왼쪽부터)·서영경·주상영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후임 금통위원 조윤제(왼쪽부터)·서영경·주상영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기준금리 등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신임 위원 3명의 평균 재산은 50억원에 달했다.

이들의 부동산 재산은 총 100억원 수준이었다.

31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보에 게재한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사항을 보면 4월 취임 당시 조윤제 위원은 59억6천만원, 서영경 위원은 50억1천만원, 주상영 위원은 38억3천만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이들의 평균 재산은 49억3천여만원이다.

이들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으로, 3명의 부동산 재산 신고액은 100억원에 달했다.

조 위원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임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대지, 서대문구 북아현동 단독주택 등을 포함해 부동산으로 40억원 가까이 신고했다.

이번에 공개된 조 위원의 재산 신고에는 비금융 중소기업 3곳의 주식 9억2천만원가량이 포함됐으나 한은에 따르면 직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결론 나 현재는 모두 처분한 상태다. 조 위원은 이 주식 보유 문제로 5월 28일 금통위 본회의에 스스로 제척 신청을 하기도 했다.

한은 최초의 여성 임원(부총재보) 출신인 서 위원의 부동산 재산은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 역삼동 건물 지분을 비롯해 총 26억원이었다.

건국대 교수를 지낸 주 위원은 경기도 화성시 팔달면 임야, 공장용지,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 등 부동산으로 33억원을 신고했다.

[해전의 승부수 군함②] 많은 노잡이, 무거운 배 가속도에 적함 전멸

● 살라미스해전 승부 가른 아테네의 무거운 배
●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구현된 ‘삼단노선’
● 적함의 노 파괴하는 ‘디에크플루스’ 전술
● 인류 최초의 배는 ‘가죽배’거나 ‘마상이(dugout)’

현대 그리스 해군이 제작한 복제 삼단노선 올림피아스 호. [미국연방정부 홈페이지]
현대 그리스 해군이 제작한 복제 삼단노선 올림피아스 호. [미국연방정부 홈페이지]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군에 치욕스럽게 패배한 다리우스왕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를 설욕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다리우스왕을 이은 크세르크세스왕은 수려한 용모와 명석한 두뇌를 보유한 30대의 젊은 대왕이었다. ‘대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가 다스린 페르시아 영토는 오늘날 이란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서아시아, 남쪽으로는 이집트, 북쪽으로는 마케도니아까지 뻗어 있어서 그 면적이 지금의 미국에 필적했다. 인구도 2000만 명 정도로 당시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달했다.

바다를 처벌한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하나는 그가 “페르시아의 국경을 오직 제우스의 것인 하늘에만 맞닿도록 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페르시아 대군을 이끌고 오늘날 터키에 있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널 때 폭풍우가 몰아쳐 배들을 연결해 만든 부교가 훼손되자 폭풍우를 일으킨 바다에 채찍을 300대 가하고 족쇄를 채운(족쇄를 바닷물에 빠뜨렸다) 후 불에 달군 쇠로 바닷물을 지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그리스를 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사상 최대의 원정군이 꾸려졌다.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아시리아, 파르티아, 아라비아, 인도, 리비아, 에티오피아, 페니키아, 이집트의 군이 모였다. 헤로도토스는 트라키아에서 열린 열병식 때 참가한 보병이 170만 명이었다고 기록한다(역사학자들은 20만 명으로 추산한다). 해군의 규모도 엄청났다. 함선이 1300여 척, 화물선이 3000여 척이었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반도 북쪽에서부터 육상과 해상 양방향으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영화 300’에 나오듯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스파르타 정예군을 비롯한 8000명의 그리스 연합군이 막아섰다가 전멸했다. 페르시아군의 압도적 군사력에 전의를 상실한 상당수의 그리스 국가는 페르시아군에 투항하고 합세했다. 그 결과 페르시아군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군의 최종 병력 수가 528만 명이라고 기록했다(사학자들은 36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에 반해 아테네의 인구 전체가 15만 명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아테네는 승산이 없었다. 델포이의 무녀는 “전차를 몰고 달려오는 사나운 군신의 발아래 아테네가 짓밟히고 불탈 것”이라고 하면서도 “제우스께서는 ‘나무 성채’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하게 해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페르시아군의 재침공을 대비해 3년 전부터 해군을 건설해 온 테미스토클레스는 ‘나무 성채’가 해군 함선을 의미한다고 봤다. 그는 아테네 주민들을 함선에 태우고 세 곳으로 나누어 피신시켰다. 그중 10여만 명이 피신한 곳이 아테네 남쪽 살라미스섬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살라미스섬에서 페르시아군에 의해 불타는 아테네를 지켜보면서 치욕의 눈물을 흘렸다. 

육상에서 대패한 그리스 연합군은 해상에서의 승리가 절실했다. 그런데 해전을 어디서 치를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었다. 스파르타와 코린토는 살라미스섬보다 더 서쪽으로 후퇴해 코린토 해협에서 해전을 치르자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실상 살라미스섬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페르시아군이 살라미스섬에 있는 아테네인을 도륙할 것이 뻔했다. 이에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수적으로 열세인 그리스 함대가 열린 바다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맞붙어서는 승산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승부수

지휘관들은 격렬한 논쟁과 분열에 빠져들었다. 헤로도토스가 이때의 상황을 “살라미스를 놓고 논쟁의 마상 창시합(기병 두 명이 창을 들고 대결하는 무술)을 벌였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때 여우처럼 꾀가 많은 테미스토클레스는 두 가지 승부수를 띄웠다. 첫째는 한창 지휘관들이 격론을 벌이던 와중에 자신의 심복 하인인 시킨노스를 은밀히 페르시아 진영으로 보낸 것이다. 시킨노스는 페르시아 장수에게 그리스 지휘관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고 다수의 뜻에 따라 그리스 함대가 후방으로 퇴각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므로 재빨리 기습하면 전멸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렸다(사실 격론을 벌이던 시점까지는 시킨노스의 말에 거짓말은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페르시아 함대가 당장 공격을 시작하도록 만들고 그로 인해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협에 주둔한 현재 상태 그대로 해전을 벌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둘째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다른 그리스 지휘관들에게 그리스 함대가 코린토 해협으로 물러서서 살라미스를 포기한다면 지금 당장 그리스 연합 해군에서 아테네의 함선들만 빼내 아테네인들을 태우고 이탈리아 남부에 가서 정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리스 함대 300여 척 중에서 아테네 함선이 200여 척이었기 때문에 아테네의 함선이 빠지면 그리스 함대 전체가 와해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파르타나 코린토를 비롯한 다른 도시국가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시킨노스의 말을 믿은 페르시아 함대가 즉시 공격을 준비하는 기미가 보인다는 첩보가 회의장 안에 전해졌다. 

바로 다음 날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전투가 시작되자 좁은 해협에 밀려들어서 전후좌우로 촘촘하게 밀집해 있던 페르시아 함대는 서로 뒤엉키고 말았다. 마침 강풍이 불어 좁은 수로가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자 가벼운 페르시아 함선들이 요동치고 선상에 서 있던 페르시아 궁수들이 활을 쏘지 못하고 쓰러져 뒹굴었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 함선들은 ‘디에크플루스’ 전술을 구사했다. 두 배 사이를 빠른 속력으로 파고들면서 적함의 노를 파괴해 버리는 전술이었다. 이 경우 노가 부러질 뿐만 아니라 노잡이들도 잡고 있던 노 때문에 내장이 파열돼 죽게 된다.

결전의 날

살라미스 해전도. [충무공이순신 홈페이지]
살라미스 해전도. [충무공이순신 홈페이지]

7시간 동안 진행된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함대는 겨우 46척을 잃은 반면, 페르시아 함대는 200여 척이 침몰하고 병사 4만 명이 수장당했다. 이날의 참상을 가장 잘 기록해 놓은 이는 그리스 시인 아이스코로스였다. 그것은 그리스인의 시각이 아니라 크세르크세스왕이 모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었다. 

“바다 위에는 부서진 아군 선박의 잔해와 시체들이 둥둥 떠 있었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 수군들 때문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리스 군인들은 마치 어부들이 참치를 잡을 때처럼 아군 수군들을 두들겨 팼다. 새벽에 일어난 이 혼란은 하루 종일 계속되다가 비명과 신음 속에 날이 저물어 겨우 잠잠해졌다. 나는 이날의 참상을 차마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아테네는 지중해와 에게해 전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해양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훗날 헤겔은 ‘역사 철학’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편에는 한 명의 군주 아래 결집된 동방의 전제 체제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규모는 작지만 자유로운 개성이 넘치는 독립국가들이 전투 대형으로 맞섰다. 역사상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이 그토록 명백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 해군을 이긴 비결

작은 그리스의 함대가 어떻게 두 배 이상 규모가 큰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한 것일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역시 테미스토클레스였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직관력과 통찰력, 지혜와 추진력을 보유한 특출한 인물이었다(스포츠에 비유하자면 미국 농구팀 시카코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나 스페인 축구팀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같은 역할을 했다). 아테네 해군을 미리 조직한 것도 그였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장소로 살라미스 해협을 택한 것도 그였으며, 자신의 심복인 시킨노스를 은밀히 페르시아 진영으로 보내 페르시아 함대를 좁디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한 것도 그였다. 

여기서부터 당시 사용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군함에 초점을 맞춰보자.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그리스 함선들은 무거웠던 반면 페르시아의 함선들은 가벼웠다. 그리스의 배는 급조된 탓에 좋은 목재를 사용하지 못했고 그래서 배에 물이 잘 스며들었다. 배를 충분히 말리지도 못했다. 반면 페르시아군은 배를 뭍으로 건져 올려 충분히 말렸다. 배가 가벼우면 빠르다. 그러나 가벼운 배는 단점도 있었다. 무거운 배와 충돌하면 밀리거나 부서진다. 또 강풍이 불면 쉽게 요동친다. 가벼운 배의 약점은 무거운 배의 강점이 된다. 살라미스 해전 때 강풍이 부는 바람에 가벼운 페르시아 함대가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진 반면, 묵직한 그리스 함선은 페르시아 함선의 현측을 들이받는 방식의 공격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주력 함선은 삼단노선이었다. 삼단노선은 배의 한쪽 면에 붙은 노가 삼단으로 배열된 배를 말한다. 삼단노선의 장점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 배의 발전사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류 최초의 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죽배라는 설과 ‘마상이(dugout)’라는 설이 있다. 가죽배는 나무로 만든 틀에다 가방처럼 가죽을 씌워 그 안에 사람이 타는 구조다. 마상이는 통나무의 속을 긁어내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는 구조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전 3400년경의 가죽배 진흙 모형, 네덜란드에서 기원전 6300년경의 마상이가 발견됐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구현된 ‘삼단노선’

기원전 3000~4000년경에는 노를 사용하는 배가 출현했다. 그러다 쇠로 된 작은 노걸이가 생겨났다. 노를 배에 걸게 됨으로써 노잡이들이 팔의 힘이 아니라 다리의 힘으로 노를 저을 수 있어 힘이 덜 들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하나의 노를 저을 수 있게 됐다. 이후 노잡이들이 앉는 자리를 중첩적으로 배치해 이른바 이단노선, 삼단노선이 나오고 심지어 훗날에는 16단, 30단, 40단 노선까지 나오게 된다. 

아테네의 삼단노선은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구현된 작품이었다. 그리스 함대가 디에크플루스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속력이 빠른 삼단노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의 삼단노선은 길이 39m, 폭 5.5m였다. 한 척당 200명이 탔는데 그중 170명이 노잡이였고 나머지 30명은 함장, 선수에서 망을 보는 망꾼, 선미에서 키를 조종하는 키잡이, 노를 젓는 데 박자를 넣어주는 노잡이장, 박자에 맞추어 파이프를 부는 파이퍼, 수병, 궁수 등이었다. 

이들은 대개 하층민이었다.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중장보병이 각종 무기와 장비를 살 수 있는 부유층, 중산층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인해 해군을 구성하던 하층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치적 대표성까지 요구하게 됐다. 그 중심에는 역시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해군을 더욱 증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아테네 보수층은 그가 하층민들을 등에 업고 독재적 참주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471년 그리스에서 추방된다. 그가 망명한 곳은 놀랍게도 페르시아였다. 크세르크세스왕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그에게 명장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10년 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이 아테네와의 전쟁에 출전할 것을 명령하자 독배를 마시고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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